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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소개 앵커

박대웅 담임목사의 소개 및 신학사상 

"관계신학으로 실현하는 말씀목회"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21)

1. 신앙 성장기

  모태신앙이었던 저는 중학생 때 성령체험을 한 후 기도와 말씀에 열심이 생겼습니다. 교회에서 인정 받는 것이 좋아서 중고등부 활동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마음 속에서 목회자가 되는 꿈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바로 신학교에 갈 용기가 없어서 일반대학에 갔습니다. 대학기숙사에서 믿음의 선배를 만나 신앙적인 도전을 받고 IVF(한국대학생선교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IVF에서 성경에 대한 지식을 조금씩 배워가면서 저의 신앙의 틀이 새롭게 형성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감정적 열심에서 지성적 열심으로 성장하는 시기였습니다.

2. 신앙 갈등기

  대학을 졸업하고 수의사가 되어 만 13년 동안 몇 군데 미국회사들에서 돈벌이를 했습니다. 제가 경제적으로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돈벌이가 잘 되어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13년 동안 세상에서 가장으로서 돈벌이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많이 배웠습니다. 교회 밖에서도 신앙생활을 잘 한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도 깨달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주님께서 이제 그만 목회자의 길로 나아오라는 부르심이 왔습니다. 한창 돈벌이가 재미있고 더 좋은 기회가 많아지려는 때라서 즉시 순종하지 못하고 더 확실한 부르심을 기다렸습니다. 아내와 부모님들까지 부르심에 동의해줄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박대웅 화이트 발란스 copy.jpg

 그렇게 1년 남짓 기도한 후에 직장에 사표를 내고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늙으신 부모님들만 두고 떠나는 것이 사표를 내는 것 만큼 힘들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었던 신학교는 ‘프린스턴’이었습니다. 원서를 접수했지만 목회학석사(M.Div) 과정에는 유학생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못 들어가고 그대신 뉴욕 맨하탄에 있는 ‘뉴욕신학교’(NYTS)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뉴욕신학교는 역사가 110년 정도 되는 학교인데 순수 신학적 학문 연구 보다는 ‘도시목회’, ‘다민족목회’, 특히 도시빈민들과 어려운 이민자들을 위한 신학과 목회적 돌봄에 강점이 있습니다. 흑인학생들이 절반 정도로 소위 ‘Black theology’, ‘흑인영성’이 전반적인 분위기입니다. 저에게는 ‘다양성’의 소중함을 배우고 가난한 자들과 억압 당하는 자들에 대한 목회적 돌봄에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뉴욕신학교는 Blanton Peal Graduate Institute(블랜턴필 대학원)과 학점 교류를 하며 심리학과 목회적 카운셀링을 전문화 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블랜턴필은 뉴욕 맨하탄에 유일한 카운셀링 전문가 양성학교로 졸업생들은 소정의 과정을 거치면 ‘전문 상담사’ 라이센스를 받고 자기 오피스를 개업할 수 있습니다. 블랜턴필에서 3년 동안 목회적 카운셀링 상급과정까지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저에게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훈련이었습니다. 저 자신도 1년 반 동안 개인적으로 치유 상담을 받으며 제 안에 감추어진 상처들과 열등감들을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블랜턴필에서의 공부와 경험은 더 많은 학문적인 열정을 불어넣었고 뉴욕신학교 졸업 후에 다시 프린스턴신학교에 지원하여 ‘Pastoral Care’(목회적 돌봄)를 전공으로 신학석사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AAPC(미국목회적상담사연합)에 ‘Pastoral Care Specialist’로 가입했습니다. 학문적 열정이 식지는 않았지만 7년 동안 계속 공부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지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서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3. 목회 개척기

  제가 미국 뉴저지에 정착한 후에 줄곳 ‘뉴저지 소망교회’(PCUSA 소속, 박상천 목사 담임)에 출석하며 햇수로 10년 동안 이런 저런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박상천 목사님의 따뜻한 돌봄을 받으며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미국장로교(PCUSA)에서 목회 지망생과 목회 훈련생 과정을 마치고 4년만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미국장로교단은 한국에 장로교를 전파한 어머니교단으로 다양한 신학적 스펙트럼과 민주적인 정치제도가 특징입니다. 그런 교단에서 안수를 받았다는 것이 저에게는 자부심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뉴저지 소망장로교회와 박상천 목사님께서 저에게 조지아 애틀랜타에서 교회를 개척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후원을 해주었습니다. 2006년 6월 25일 엄경란 집사님 댁에서 다섯 가정이 모여 첫 예배를 드리고 Cumming에 있던 스패니쉬 교회 창고를 빌려서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한인들이 거의 없던 지역이고 낮은 양철지붕을 가진 낡고 좁은 창고를 보고 어떤 분은 중국 연변 교회 보다 못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직접 청소하고 카펫을 깔고 예배실을 꾸미며 뜨거운 여름, 폭우가 쏟아져서 전기가 나가고 사우나처럼 땀이 났지만 열심히 모이고 예배드렸습니다.

  너무나 고맙고도 기적적으로 한인들이 그곳까지 찾아와주어 1년만에 예배실이 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예배처를 찾다가 한인들이 많은 스와니 지역으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부흥해서 다섯 분의 장로님들을 세우고 조직교회가 되었습니다. 그후로 더 넓은 예배처소를 건축하고 이전하면서 불과 5년만에 중형교회 정도의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4. 목회 갈등기

  매주 새로운 가정들이 교회를 방문하는 가운데 조금씩 내적으로 쌓였던 갈등이 공동체 전체의 분위기를 부정적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런 저런 불평과 다툼들이 리더들 사이에서 커지게 되었고 저는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두려웠습니다. 그런 상태로 2년 정도가 흐르면서 새가족 방문은 뜸해졌고 기존의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개척 이후에 처음 경험한 강력한 지진이었습니다. 목회자로서 저는 모든 책임의 중심에서 잠을 잘 수가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서로 믿고 의지했던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 많이 아픈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성도들과 리더들이 상처를 받으며 좌충우돌했습니다.

 

5. 목회 성숙기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라는 말처럼 주님의 은혜로 우리 교회는 아픔을 너머 성숙으로 한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님께 간절히 매달렸고 주님께서는 견딜 만큼 힘을 주셨습니다. 조지아 센트럴 대학에서 목회학 박사 과정에 들어갈 수 있도록 무료로 초청해주어 재충전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거기서 ‘내러티브 설교학’을 강의하신 이연길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연길 목사님은 달라스 빛내리교회를 말씀중심의 교회로 크게 성장시키신 분입니다. 그분께서 평생 말씀을 연구하면서 발전시키신 분야가 바로 ‘내러티브로 성경을 읽기’입니다.

이연길 목사님께 두 학기 네 과목을 계속 배우면서 저에게 성경을 보는 새로운 눈이 조금씩 떠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익숙하던 성경 말씀이 전혀 새로운 감동으로 느껴지면서 저에게 놀라운 영적 기쁨이 회복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새롭게 목회를 시작해보라는 선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양적 교회 성장도 좋지만 갈등과 아픔을 경험하면서 질적인 교회 성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 7년을 마치고 교회 리더들에게 새로운 목회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철저한 ‘말씀 목회’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 과정으로 리더들에게 ‘내러티브로 성경 읽기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16주 과정에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었습니다. Bible Meeting(말씀과 만남)이라는 소그룹 말씀나눔 모임에 주일 2부 친교 후에 모든 성도들이 참여하도록 독려했습니다. 하지만 몇몇 리더들과 상당수의 성도들은 ‘말씀나눔’에 여전히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새로운 비전을 따르기 어려워하는 분들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여러 리더들이 인내하면서 말씀을 연구하고 나누는 과정에 참여해주었습니다. 저는 내러티브로 성경을 읽으며 동시에 내러티브로 설교하는 훈련에 더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 훈련은 지속적으로 저의 영성을 강화시키는 힘을 주었습니다. 저의 설교도 혼동기를 지나 조금씩 새롭게 자리를 잡아가시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주님께서 지금의 예배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배실은 조금 작았지만 넓은 대지와 체육관이 있는 처음 우리 소유의 예배당을 갖게 되었습니다. 새 희망을 꿈꾸게 해주시는 상징적 선물이었습니다. 새 예배당으로 이전한 이후에 교회가 양적으로는 성장하지 않았지만 질적으로는 정말 많이 성숙해져갔습니다. 특히 새로 세움을 받은 장로님들과 안수집사님들, 그리고 권사님들이 헌신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하여 섬겨주셨습니다. 그분들은 모두 지난 7년 동안 열심히 Bible Meeting과 말씀 연구 모임에 참여하시고 성경 말씀이 주는 기쁨과 능력을 체험하신 분들입니다.

  예상치 못한 코비드19의 시련이 닥쳤지만 모든 성도들은 흔들림 없이 믿음의 자리를 지켰고 오히려 ‘브엘세바 프로젝트’를 완성시켰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본당을 건축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모든 성도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셨습니다. 이 기간 중에 우리 교회는 선교지인 니카라과를 위해서 더 많은 후원과 격려를 해드릴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모든 힘과 열매들이 지난 7년 동안 말씀을 먹고 성숙한 결과라고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 말씀이 이렇게 우리를 살리시는구나”라고 간증하기 시작합니다. 말씀을 먹고 예수님을 닮아가니까 예배도 살아나고 선교도 살아나고 성도의 교제도 살아나고 가정도 살아나고 기업도 살아가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 예수소망교회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라는 이유임을 알게 됩니다. 저는 이와 같은 성도들의 반응을 보면서 주님으로부터 지난 15년 동안 수고에 대한 보상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행복하고 주님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동시에 저와 함께 ‘말씀목회’의 비전을 품고 인내하면서 여기까지 달려와준 리더들과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6. 관계 신학을 통한 행복한 삶의 실현

  내러티브로 성경을 읽고 깨달은 것이 ‘관계 신학’입니다. 내러티브의 특징은 여러 관계 속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갈등과 문제들이 어떻게 삶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있습니다. 관계 신학의 출발점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적 존재 양태가 완전한 관계로 하나이심에 있습니다. 그 완전한 관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완전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뜻은 관계적 존재로 지으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더 나아가 자연만물과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은 관계를 깨뜨림으로써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와 행복을 파괴하려고 합니다. 선악과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언약의 반지입니다. 사탄은 아담에게 언약의 반지를 벗어버리고 하나님과 관계를 깨뜨리는 것이 자유와 행복이라고 유혹했습니다. 거기서부터 모든 관계의 파괴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관계가 깨어지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깨어지고 형과 동생의 관계도 깨어졌습니다. 그렇게 관계를 깨뜨리는 데 이기심과 욕심과 교만이 이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모든 내러티브(구성된 짧은 이야기)에는 많은 갈등들이 행복과 불행의 길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디자인 하신 구원이란 결국 그런 관계 속에서의 갈등에 개입하셔서 은혜와 사랑을 보여주심으로써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면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자녀 된 관계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관계로 회복됩니다. 그렇게 은혜와 사랑이 왕노릇 하는 세계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서 지켜야 할 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것입니다.

  결국 관계 신학이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 속에 들어가서 그 구원을 살아내는 복음의 핵심 계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은 사람들, 화평케 하는 사람들이 곧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그게 우리의 삶을 행복하고 풍성하게 해주는 최고의 복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의 거의 모든 내용은 관계 신학으로 해석이 되면서 구원의 의미와 행복한 삶의 적용이 쉬워집니다. 성경에 기록된 내러티브들을 기억하고 해석함으로써 우리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비슷한 내러티브를 복음적으로 이해하고 더 깊은 사랑의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7. 맺는 말

  제가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견인해주심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으로 바꾸어주시며 저를 훈련시키셨습니다. 저는 지금이 지난 60년의 인생에서 가장 성경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순간입니다. 이제 조금 하나님의 뜻이 보이고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날마다 새롭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몸은 늙어 가지만 영은 더욱 새롭고 말씀은 더욱 송이꿀처럼 다디 답니다. 저는 말씀을 통해 우리 성도님들과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풍성하게 먹기를 갈망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성숙해져서 성령의 열매를 인격적으로 풍성해 맺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의 모든 관계가 화목해짐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한 복이 실현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가 되어 우리 교회를 통해서 생명수의 샘물이 해외 선교지와 지역 사회 속으로 강물처럼 흘러가기를 소망합니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요한계시록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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